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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6일
어렸을 적 로저 무어의 007을 처음으로 봤었다. 뭐였는 지는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기억이 안난다. 사실 007 시리즈는-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그닥 인상깊은 영화라고 할 수 없으니까.
원래 오리는 처음 본 게 지 부몬줄 안다며? 나도 비슷했나 보다. 숀 코너리의 007을 한동안 어색해 했거든. 나이를 좀 먹고 나서야 숀 코너리의 007도 좋아지더라. 사실 '007 답다'는 가치기준은 아마도 없으리라. 다만 일전에도 밝혔듯이 내가 007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자가 실제로 무적의 초인이면서, 또 그 사실을 얄밉게도 아주 잘 알고 뻔뻔하게 이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또한 내가 매우 좋아하는 'Bond, James Bond'라는 대사는 그 '무적의 뺀질이' 포스를 응축한 한마디가 아니던가. 그래서 역대 007 역 배우를 평가할 때 기준이 그들이 얼마나 '무적의 뺀질이' 다운가였었다. 머릿속에 박힌 007의 이미지로는 무적의 카리스마:뺀질이의 기름기가 대략 40:60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로저 무어는 30:70 정도로 뺀질이에 더 가까웠고, 숀 코너리는 50:50 정도로 무적의 카리스마를 좀더 풍겼기 때문에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가 상당히 뭐했더랬다. (어렸을 적에는 뺀질이 이미지를 좀 더 좋아했는지, 아니면 오리현상-_- 때문이었는지 로저 무어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러다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등장했다. 완벽히 40:60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35:65 정도로 역대 007 중에서는 가장 내가 생각하는 007의 이미지에 가깝더구만. 비단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최소한 이전의 두 장기집권 007 배우에 비해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상당기간 오래 007역을 맡아왔었고 말이다. 그러다가 어인 일인지 이번에 007역 배우가 바뀌게 됐다. 다니엘 크레이그? 처음 봤는지 아니면 봤어도 기억에 없는지(남자를 기억해서 뭣에 쓰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생소한 이름의 배우. 티저 동영상이 돌길래 한번 봤는데 이건 뭐-_-; 007이 웬 도시빈민 액션을 하고 있냐! 잠시 찌질이 오타쿠로 변신해서 '나의 007은 이러치 아나~'라고 찌질대고 싶었지만 감상은 본편까지 미뤄두기로 하고 개봉을 기다렸다. 의외로 평들이 좋아서 살짝 당혹스럽기도 했고, 제임스 본드가 막 더블 오 자격을 얻을 무렵의 얘기-즉 007 탄생편-라는 사전정보도 얻었다. 그리하야 지난 주말에 우여곡절 끝에 보게 됐는데, 뭐... 이 정도면 준수하네. 막 더블 오 자격을 얻은 미완성의 제임스 본드가 '무적의 뺀질이' 포스를 막 두르려고 하는 단계까지의 얘기를 별 무리 없이 풀어냈다. 아마 적어도 한편 정도는 더 다니엘 크레이그로 007을 찍을 것 처럼 보이는데, 그 영화가 007로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인지(즉, 카지노 로열의 후속편), 아니면 그냥 완성된 007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인지(즉, 그냥 일반적인 007 시리즈 중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서 얼마나 007다운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평을 내리련다. 결론: 그냥 평범하게 재미있는 액션영화 수준. 다니엘 크레이그에 대해서는 시리즈의 다음 영화를 보고 평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좀 길었고, 딱 하나 유감인 점이 있었다. 다른거 다 이해한다 치자, 그-40대는 돼 보이는- 얼굴로 첫사랑을 속삭이는 건 좀 아니지 않냐-_-? (물론 007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못 해결한 고문씬 역시 좀 유감이지만 아직 미숙할 무렵 얘기니까 봐주자.) PS. 영화를 보고 난 뒤 마나님 말씀: 저런 얼굴로 007이 되니까 저런 일들을 당하는 거지. 동감. 피어스 브로스넌으로는(아니 로저 무어나 숀 코너리도) 저런 장면들 못찍었을 게다. PS2. IMDB를 뒤져보고 왔다. 툼 레이더에 나왔다던데 기억에 없다-_-; 또한 아니나 다를까 007 차기작의 주연으로 내정돼 있더라. PS3. 내친김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찾아 봤다. 이런. 1953년생이네-_-; 이제 007 찍기엔 나이가 들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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